[명칭유래] 청송 주왕산 周王山

주왕산 周王山

▲ 출처 : 청송군청 - 청송여행

 

주왕산(周王山)은 1976년 우리나라 1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경북 제일의 명산으로 산의 모습이 돌로 병풍을 친것 같다하여 옛날에는 석병산(石屛山)이라 하였습니다.

 

주왕산은 신라말부터 주왕이 은거하였던 산이라 하여 주왕산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주왕은 중국 당나라 때 주도라는 사람으로 진나라의 회복을 꿈꾸며 반역을 일으켰으나 당나라 군사에게 패하여 이곳 석병산(주왕산의 옛이름) 까지 쫓기어 왔습니다. 이에 당나라 왕이 신라왕에게 주왕을 잡아달라 요청하여 주왕은 이곳에서 신라장군 (마장군 형제들) 에 의해 주왕굴에서 최후를 마쳤습니다.

 

주왕산의 특징은 산 이름을 주왕이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따왔는데, 주왕산은 주왕과 관련된 전설의 산이기도 합니다. 또한 주왕산은 설악산, 월출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암산(岩山)중에 하나입니다.

 

 

▲ 출처 : 나무위키 - 주왕산

 

중국 당나라 때의 주도(周鍍)는 스스로를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 칭하고 당나라 수도 장안을 공격했으나 안록산의 난을 평정한 곽자의(郭子儀) 장군에게 패하여 요동으로 도망쳐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이 사람을 주왕(周王)이라고 한다.

 

주왕은 반란이 실패하자 멀리 한반도의 석병산으로 피신했다. 그는 산입구가 되는 주방천 협곡에 산성(자하성)을 쌓고 재기를 노린다. 나중에 주왕이 신라 땅에 숨어 들어간 것을 안 당나라에서는 그를 잡아달라고 신라에 요청했다. 신라는 마일성 장군의 형제들을 필두로 진압군을 이곳 석병산으로 보내 주왕과 그의 군사들을 격퇴했다.

 

신라군과의 싸움에서 패한 주왕은 폭포수가 입구를 가리고 있는 주왕굴에 숨어들었다. 그러나 몰래 세수를 하러 나왔던 주왕은 그만 마장군의 낚시에 걸려 생포되어 당나라 장안에서 참수되었다고 한다. 주왕이 마장군의 화살과 철퇴를 맞고 최후를 맞이했다고도 전한다.

 

주왕이 신라 마장군의 화살에 맞아 흘린 피가 주방천을 물들인 뒤 붉은 꽃망울을 피웠다는 꽃이 주왕산 수달래이다. 그래서 수달래는 주왕의 넋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무장굴은 주왕이 갑옷과 무기를 숨긴 곳으로 전해진다. 기봉은 주왕이 적과 대치할 때 대장기를 세웠다고도 전해지고, 군량미처럼 보이기 위해 낱가리를 돌렸다고도 전해진다. 주왕산 초입의 대전사(大典寺)는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을 위해 고려 태조 2년 보조국사 지눌이 세웠다고 전해지며, 백련암은 주왕의 딸 백련공주의 이름을 딴 암자라고 한다. 연화굴은 백련공주가 성불한 곳이라고도 하고 주왕이 군사를 훈련시킨 곳이라고도 한다. 주왕굴 앞의 주왕암은 주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곳이라고 한다.